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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국내여행

[경남 합천 해인사] 삼보 사찰 해인사..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

by 골든 아워 2024. 5. 14.
 대한민국의 큰 사찰 3개를 일컬어 3보 사찰이라고 한다. 
그중 경남 합천에 있는 해인사에 다녀왔다.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대장경을 봉안한 곳이라고 해서 3보 중 법보사찰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3 보사찰이 무엇인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보 사찰은 경상남도 양산에 있는 통도사(通度寺),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海印寺), 전라남도 순천의 송광사(松廣寺) 셋을 가리킨다. 삼보는 불교의 신행 귀의대상인 불(佛)·법(法)·승(僧)을 가리키는 말로써 통도사가 불, 해인사가 법, 송광사가 승에 해당한다.
  통도사는 자장(慈藏) 율사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창건한 절이다. 그는 불경과 불사리(佛舍利)를 가지고 귀국하였는데,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할 목적으로 이곳 통도사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조성하였다. 그는 승통(僧統)이 되어 이곳 통도사의 금강계단에서 승니(僧尼)의 기강을 바로잡았다고 하는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여 통도사를 불보사찰(佛寶寺刹)이라고 한다. 영원한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상징하는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통도사의 주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불단(佛壇)만 마련하였다.
  해인사는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대장경을 봉안한 곳이라고 해서 법보사찰(法寶寺刹)이라고 한다. 강화도에서 완성한 고려대장경은 보관의 어려움 때문에 조선 초기에 가야산 해인사로 옮겨졌다. 이곳은 풍수지리에 의하여 예로부터 승지(勝地)로 손꼽히는 곳이었고, 장경각(藏經閣)을 따로 지어 고려대장경을 안치하게 된 것이다.
  송광사는 큰스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해서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한다.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은 이곳에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도모하였다. 원래 팔공산의 거조사(居祖寺)에서 이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뒤에 송광사로 장소를 옮겼다. 그 뒤 그의 제자였던 혜심(慧諶)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까지 16명의 국사가 연이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고 하여 승보사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언제부터 삼보사찰이라는 칭호가 붙여지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이후에 쓰이게 되었다고 보인다.
  오늘날 이 삼보사찰은 전통적인 승려 교육과정인 선원(禪院)·강원(講院), 그리고 율원(律院)의 세 기능을 다 집합시켜 놓았다는 뜻에서 각각 총림(叢林)이라고도 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삼보사찰(三寶寺刹))]

 불교를 빼고서 우리나라 역사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온 백성이 믿었던 신앙이며, 그 후로도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종교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극복을 위해 앞장섰던 서산대사, 사명대사, 승병들.. 거란과 몽골의 침략을 극복하려는 염원을 담은 대장경판들..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고려대장경 판전비석.. 일주문 앞에 있다.

 내비게이션에 '해인사 일주문'을 검색하고, 가까운 주차장에 주차를 한다. 일주문으로 가는 길에는 원표와 당간지주가 양쪽으로 굳건하게 서 있다. 영지라는 연못에는 아쉽지만 물이 말라있었다.

해인사 원표(海印寺 元標) - 해인사를 기점으로 거리를 적어놓는 이정표
해인사 당간지주(海印寺 幢竿支柱) - 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 의식이 있을 때 당(幢)을 달아 두는 돌기둥으로 한 쌍의 돌기둥이 마주보고 있음
해인사 일주문 - 모든 중생이 성불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의 첫 관문을 상징하며 옆에서 보았을 때 기둥이 하나로 겹쳐보인다고 해서 일주문이라 함.

  해인사의 일주문은 홍화문이라고도 하는데, 단풍이 한창 들 때 일주문과 일대의 나무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마치 붉은색 노을이 끼는 듯하다고 해서 불리게 됐다.

 일주문을 지나면 말라죽은 나무가 보이는데, 이 나무는 해인사가 창건할 때 심어진 나무로 무려 1200년의 세월을 지켜오다 1945년 고사했다고 한다.

해인사 고사목

 고사목 앞에는 염주석이 있는데, 해인사에는 역사적으로 화재가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화기를 누르기 위해 바닷물.. 즉, 소금을 돌 안에 묻어 놓았다고 한다.

염주석.. 기와로 덮어놓았다.
돌 안에 홈이 파여있고, 소금물이 고여 있다.
봉황문에 이르러서 뒤돌아 찍은 전경.. 염주석, 고사목, 일주문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해탈문에서 내려다 본 모습.. 봉황문(사천왕), 일주문까지의 길이 보인다.

 해인사는 화엄종으로 화엄종 계열의 사찰들은 문과 문이 일직선으로 배열되어있지 않다고 한다.

춘분과 추분 낮2시경, 맑은 날이면, 들어오는 햇빛이 마치 연꽃의 형상이라서 연화문이라고 불린다.
장경판전 연화문을 지나게되면, 머리위로 팔만대장경책을 자연스럽게 이게 된다.
장경판전의 북쪽 건물인 법보전.. 남쪽의 수다라장과 81,352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다.
우측의 법보전의 창문과 좌측의 수다라장의 창문을 보면, 위 아래가 바뀌어 있는 형상이다. 공기(바람)의 순환을 고려한 설계.. 국보 제52호 장경판전
법보전에 달린 풍경

 

 절에서 이어져 내려가는 소리길과 더불어 하루 즈음 시간을 내어 방문한다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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